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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별세 삼성 브랜드 ‘초일류 기업 성장’ 약속 지켰다

1987년 취임사 약속 지키며 역사 속으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78세로 별세 했다.

1987년 11월 11일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별세한 이후 삼성 그룹의 2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27년간 삼성을 총 지휘 하면서 매출 40배, 시가총액 300배 이상을 키우면서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시킨 인물이다.

이건희

이건희 회장은 1942년 생으로 지난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자택에서 쓰러져 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받고 소생해 6년 5개월 동안 투병을 이어오다 25일 오전 서울 삼성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건희 회장은 선친인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7번째 아들이다.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중 막내 아들로 태어난 이건희 회장은 경남 의령 친가에서 할머니 손에 자라다 1947년 상경했다.

1953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당시 부친인 이병철 회장이 “선진국을 배우라”는 엄명이 있었다고 한다.

어린시절 영화감상과 애완견 기르기 등에 심취해었던 이건희 회장은 일본 유학생활을 마치고 서울사대부고 재학시절 레슬링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일본 와세대대학 상학부와 미국 조지위싱턴대학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이건희 회장은 1966년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재학 중이던 홍라희 여사와 만나 이듬해 결혼식을 올렸다.

이건희
1972년 서울 장충동 자택 (왼쪽부터 시계방향)이병철 회장, 이명희 신세계 그룹회장, 이건희 회장, 이인희 전 한솔그룹 고문, 이재용 부회장

1970년 미국 실리콘벨리에서 하이테크 산업 진출을 모색한 이건희 회장은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을 승진하면 본격적으로 삼성그룹 후계자로 경영수업을 시작 했다.

삼성그룹의 당초 후계자는 형인 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었다.

이건희
1983년 경기도 용인시 기흥 반도체공장 건설 현장을 둘러보는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

하지만 제일비료 회장이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아버지 이병철회장의 눈밖에 나면서 이건희 회장이 회장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1987년 12월 1일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아트홀 이건희 삼성그룹 2대 회장 취임식

1987년 이병철 회장이 별세 하면서 그룹회장으로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이후 27년 간 삼성그룹을 총지휘 하면서 삼성을 글로벌 기업을 만들었다.

이건희 회장 어록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90년대까지는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다.” (1987년 12월 1일 취임사)

“뛸 사람은 뛰어라. 바삐 걸을 사람은 걸어라. 말리지 않는다. 걷기 싫으면 놀아라. 안 내쫓는다. 그러나 남의 발목은 잡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왜 앞으로 가려는 사람을 옆으로 돌려놓는가?”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회의)

“출근부 찍지 마라. 없애라. 집이든 어디에서든 생각만 있으면 된다. 구태여 회사에서만 할 필요 없다. 6개월 밤을 새워서 일하다가 6개월 놀아도 좋다. 논다고 평가하면 안 된다. 놀아도 제대로 놀아라.”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회의)

“결국, 내가 변해야 한다.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야 한다. 극단적으로 얘기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회의)

“불량은 암이다. 삼성은 자칫 잘못하면 암의 말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생산 현장에 나사가 굴러다녀도 줍는 사람이 없는 조직이 삼성전자이고, 3만 명이 만들고 6천 명이 고치러 다니는 비효율, 낭비적인 집단인 무감각한 회사다.”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회의)

“과장에서 부장까지는 5시까지는 정리하고 모두 사무실을 나가세요. 이것은 명령입니다.” (1993년 7·4제 실시를 지시하면서)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 (1995년 베이징 특파원들과 간담회)

“제트기가 음속(1마하)의 두 배로 날려고 하면 엔진의 힘만 두 배로 있다고 되는가. 재료공학부터 기초물리, 모든 재질과 소재가 바뀌어야 초음속으로 날 수 있다.” (2002년 4월 사장단 회의)

“200∼300년 전에는 10만∼20만명이 군주와 왕족을 먹여 살렸지만 21세기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 명의 직원을 먹여 살린다” (2002년 6월 인재 전략 사장단 워크숍)

“인재를 키우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 (2003년 5월 사장단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는 샌드위치 신세다.” (2007년 1월 전경련 회장단 회의)

“삼성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라면,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어야 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기꺼이 협력하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2011년 1월 신년사)

이건희 회장

“여성 인력을 잘 활용하지 못하면 회사와 나라의 손해다.” (2012년 여성 승진자 오찬)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2010년 3월 경영복귀)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실패가 두렵지 않은 도전과 혁신, 자율과 창의가 살아 숨 쉬는 창조경영을 완성해야 한다.” (2013년 10월 신경영 20주년 만찬)

“다시 한번 바꿔야 한다. 변화의 주도권을 잡으려면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 (2014년 1월 신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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