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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작 ‘흑금성 사건’ 실화 줄거리 박채서 역 황정민 그는 누구인가?

영화 ‘공작’ 은 북으로 간 스파이 박채서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입니다.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활동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특수공작원의 이야기로 국군정보사령부에서 장교로 복무하다 1993년 안기부 대북공작원으로 활약한 박채서(64)씨를 실존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공작

영화 공작 줄거리

영화 공작에서 박채서 암호명 흑금성역은 배우 황정민이 맡았습니다.

황정민은 정보사령부에서 안기부로 스카우트 되면서 북핵의 실체를 캐기 위해 북의 고위층내부로 잠입하라는 지령을 받게 되는데요

안기부 해외실장 최학성(조진웅)과 대통령 외에는 그 누구도 흑금성의 실체를 모르는 가운데 황정민은 대북사업가로 위장해 베이징 주재 북한 고위 간부 리명운(이성민)에게 접근하고 수년에 걸쳐 리명운과 두터운 신의를 쌓게 됩니다.

황정민 흑금성은 리명운 이성민을 통해 북한 권력층의 신뢰를 얻는데 성공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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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흑금성 박채서씨는 인터뷰에서 1996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직접 만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97년 대선 직전 흑금성은 남과 북의 수뇌부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 하게 됩니다.

공작인물관계도

영화 ‘공작’의 줄거리는 흑금성이 안기부 비밀요원이 되는 순간 부터 안기부의 배신으로 신분이 폭로하는 시점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그 동안 신문이나 책으로 알려진 내용과 흡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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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으로 간 안기부 비밀 공작원 ‘흑금성’ 사건 정리

흑금성 박채서 소령은 북한이 당면한 자금난을 이용한 공작안을 기획합니다.이에 엘리트였던 박소령은 무능하고 불평불만이 많은 장교로 변모하기 시작 하는데요 이때 부터 북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한 것입니다.

동료 장교에게 수시로 돈일 빌리고 갚지 않아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히기 까지 하고 1993년 3월 그는 3사 출신의 그렇고 그런 소령으로 군복을 벗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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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자신의 이미지를 훼손 하면서 정보사령부를 나온것은 바로 ‘편승공작’으로 자신이 단독으로 대북침투 사업을 벌이는게 아니라 대북사업에 열의가 있는 사업가를 지원하고 거기에 ‘편승’해 대북침투를 실현 하려 한 것입니다.

 

박채서는 배우 채시라를 발굴해난 박기영에게 접근 하는데요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광로를 북한에서 촬영하는 방안을 꿈꾸고 있는 박기영이 박채서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북한으로 들어가기에 가장 좋은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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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영의 이웃집으로 이사간 박채서는 박기영과 친분을 쌓는데 성공하고 1995년 ‘커뮤니케이션아자(AZA)’ 라는 회사를 설립 전무 명함을 가지게 됩니다.

 

커뮤니케이션아자 는 열심히 하자며 외치는 ‘아자’를 의미 하며 A에서 Z까지 갔다가 다시 A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띠고 있다고 합니다.

 

아자를 설립 후 박채서 흑금성은 ‘광명성경제연합회’ 베이징 대표부의 리철 등을 통해 북한에서 광고 촬영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는데요 김정일의 호를 딴 이 기구는 대남 경제협력 사업을 관장 하는 곳입니다.

 

당시 북한은 1990년을 전후해 동구권 붕괴에 이어 1993년 제1차 핵 위기로 심한 경제난에 빠져 있었는데요 여기에 자연재해마져 겹쳐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던 시기 입니다.

1996년 북한 신년사에서 ‘고난의 행군’이 표방될 정도였는데요 박채서는 이런 점을 이용해 광고촬영 사업이 북한이 이득이 될 거라는 미끼를 앞세워 북한 지도부에 접근 했고 그 결과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하고 독점사업권을 따내는데 성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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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채서의 사업은 급속히 불어났고 북한 내 광고촬영 독점을 발판으로 핸드폰 애니콜 광고의 북한 촬영 건을 삼성전자와 함께 추진하게 되고 또한 북한 내 TV촬영 독점권도 얻어냈다. 이를 기반으로 박채서는 1997년MBC와도 합작하되는데 그해 그의 나이 43세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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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채서가 성곡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데는 자신만의 비결이 있었는데 북한 쪽 첩보도 잘 얻어 왔지만 상대적으로 남쪽의 정보도 과감하게 넘겨줬기 때문입니다. 기자나 야당 정치인들과도 은밀히 만나 고급 고급 정보를 제공하면서 별도의 인맥을 구축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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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보수정권의 대통령 후보가 최초로 패배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자 ‘북풍’이 검찰의 수사대상이 되자 이에 맞서 안기부 지도부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맞불 작전을 펼치는데 ‘새정치국민회의’ 측의 대북 접촉을 언론을 통해 흘려보내는데 이때 안기부에서 공개한 문건에서 흑금성의 존재가 공개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흑금성과 접촉했던 사람들이 흑금성과 연관을 지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흑금성 은 왜 이중간첩?

흑금성 관련 자료를 찾던 중 1998년 4월 2일자 시사저널의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흑금성과 신뢰 관계 16개월 취재 일기”라는 제목의 글인데요 이글은 흑금성에 대한 자세한 기록들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럼 흑금성은 왜 이중간첩이란 오명을 쓰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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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금성은 북한 수뇌부들과 접촉을 하면서 알게 된 내용은 ‘대통령선거’ 에 북쪽의 개입 이었습니다.

시사저널에 따르면 흑금성은 북쪽의 대선 개입을 막기 위해 야당정치인을 만나기 시작 했다고 하는데요

그 정치인은 바로 국민회의 정동영 의원 이었습니다.

하지만 초기 흑금성의 이야기를 반신반의 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후 오익제 월북 사건이 터지면서 흑금성의 경고가 현실이 되었고 국민회의는 천용택 의원을 팀장으로 한 북풍 대책팀을 구성하게 됩니다.

이후 1997년 9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추석 연휴 기간 비밀 방북한 사실을 북한측 핫라인을 통해 확인하고 이를 정동영의원에게 알려주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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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과 북한측의 거래에 촉각을 세우고 있던 국민회의는 이때 부터 여의도 한 호텔에서 천용택의원과 정동영의원이 함께 흑금성을 만났습니다.

 

국민회의 두 의원과 자주 만남을 가던 흑금성은 결국 안기부 감찰실에 노출이 되었는데요 이때 부터 미행, 감시, 도청이 시작 되었습니다.

이에 흑금성은 국민회의 두 의원을 왜 만나는지 보고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부러 허위 정보 보고를 올렸고 그 문서 일부가 ‘해외 공작원 정보 보고’문건에 담겨 있었습니다.

이후 흑금성이라는 특수공작원 신분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흑금성이 보고한 문건의 상당한 부분이 자신의 보고와 달리15대 대통령선거 이후 짜집기 된었고 ‘한겨레’ 가 이를 단독 보도 하면서 이중 간첩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1998년 5월 2일 당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서 “박채서는 안기부의 4급 상당 공작원이다”라고 밝히면서 이중간첩 혐의를 벗게 되었습니다.

 

1998년 흑금성 박채서의 커뮤니티아자 는 국가를 상대로 77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가 하는데요 안기부가 흑금성의 존재를 공개하는 바람에 대북사업이 무산되었다는 이유였습니다.

흑금성만기출소

▲ 2016년 5월 31일 6년만에 만기출소 하는 흑금성

이후 박채서는 대북활동을 계속이 갔고 노무현정권 시절 한미연합군 전시작전 계획인 ‘작전계획5027’의 대강을 베이징에서 북한 공작원에게 넘겨줬습니다.

이로 인해 이명박 정권시절인 2010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6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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