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의 왕비 단경왕후 박민영
단경왕후 는 조선의 11대 왕인 중종의 비 로 중종반정으로 왕후가 되었지만 아버지 신수근이 매부이니 연산군을 위해 중종반정을 반대했기 때문에 반정추진파에 의해 살해 당하면서 폐위되었다.
이후 영조때 복위 되었다.
단경왕후는 1499년 12살 중종이 진성대군으로 있을 때 결혼을 해 부부인에 책봉되었다.
이후 종중반정으로 왕후가 되었지만 아버지 신수근이 연산군의 처남으로 역적이 되어 반정세력의요구 따라 왕후가 된지 7일 만에 폐위 된다.
단경왕후는 조선의 역대 왕비 중 가장 잛은 재위기간으로 가진 왕후 이다.
중종은 1506년 9월 9일 저녁 단경왕후 가 궐 밖으로 나자가 다음날 9월 10일 새왕비를 책봉하는 일을 허락 하게 되는데요
부인이 쫒겨난지 다음날 새로운 왕비를 책봉했다는 건 아마도 중종의 뜻이라기 보다는 신하들의 압박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실제 중종 과 단경왕후 사이에는 인왕산 치마바위 전설이 있는데요
단경왕후 가 궁을 나간 뒤부터 중종은 단경왕후를 매우 그리워해 폐위된 왕후 가 나와 있던 사가 방향을 자주 바라보곤 했다고 합니다.
그 사실을 전해들은 단경왕후 는 자신의 치마를 인왕산 바위에 중종이 볼 수 있도록 걸어놨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그저 전해 오는 야사 인데요 전해 지는 이야기에는 중종이 단경왕후를 매우 그리워 했다고 하는데 실제 실록에는 이런 기록이 없습니다.
단 중종 11년 고려사에서 명종때 최충수가 딸을 태자에게 시집보내려고 이미 있던 태자비를 폐출하게 만들고 이에 궁의 사람들이 모두 울었다는 기록을 들은 중종이 한숨을 쉬며 감정을 드러냈다는 언급이 있는데요
후날 이일을 두고 박원종의 협박으로 단경왕후를 폐위 한 것을 후회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한 중종이 승하하기 전 한 여인이 은밀히 궁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세간에서는 이 여인이 중종이 죽기 전 단 한번 이라도 단경왕후를 보기 위해 부른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관에 따르면 그 여인은 중종의 쾌유를 빌기 위한 여승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단경왕후 는 폐비 신씨로 불렸는데요 영조때 왕후로 복위 되면서 단경왕후라는 시호를 받게 되었고 이후 무덤도 왕비의 격식에 맞게 조성되었습니다.
연산군의 정실인 폐비 신씨는 신수근의 여동생이기 때문에 단경왕후는 신씨는 폐비 신씨의 조카딸이 되고 고모와 조카가 나란히 폐비가 되었습니다.
한편 KBS 수목드라마 ‘7일의 왕비’ 는 단경왕후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이야기로 박민영이 단경왕후 역을 맡아 오는 5월 31일 첫 방송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