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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김

앙드레김 “김복남 한국을 빛낸 패션디자이너”

앙드레김 “김복남 한국을 빛낸 패션디자이너”
한국 패션계를 대표하는 패션디자이너 앙드레김(본명 김복남)이 향년 75세로 세상과 작별을 했다.
지난 12일 오후 7시 25분경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숙환, 김기로 인한 폐렴 증상이 악화되어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앙드레김(김복남)은 1935년 8월 24일 경기도 고양구 파발리에서 2남 3녀중 넷째로  해방이 되기전 태어나 격동의 세월을 지켜보며 살아온 한국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하다.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앙드레김은 다섯남매와 어울려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평범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어린시절 전통결혼식 에서 신부가 입은 화려한 빛깔의 활옷이 내눈속에, 내마음속에 그림처럼 생생하게 남았다고 회고한 앙드레김은 붉은색과 녹색의 조화는 어쩌면 그렇게 아름다운지, 그 예븐 빛깔이 너무 좋아 아침 저녁으로 구경다니곤 했다고 한다.

이후 신도초등학교에 입학한 앙드레김은 그림그리기에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이또한 그가 패션디자이너로 세계를 놀라게 할 신호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림을 좋아 하는 앙드레김은 그림이 의상으로 바뀌었다 당시 “나는 미술과 음악 연극시간이 좋아서 어디서 이런 공부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후 앙드레김은  6.25 전쟁을 겪게되고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된다. 

부산에서 처음으로 바다를 본 앙드레김은 평화로운 바다가 비바람에 무섭게 으르렁댈때는 울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부산에서 앙드레김은 자신의 일생을 결정지을 계기를 찾게되는데 그것이 바로 “영화” 였다.

앙드레김은 영화 “애수”,”마음의 행로”, “미녀와 야수”, “나의 청춘 마리안느” 그리고 오드리 헵번의 “파리의 여인” 과 “퍼니 페이스”를 보고 비로서 자신의 가야 할 길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오드리 헵번의 “퍼니 페이스”를 본 앙드레김은 극중 여배우들이 디자이너 지방시가 디자인한 의상을 여러 벌 입고 나오는 것을 보고 “여성의 아름다운 꿈을 실현하는 옷을 만드는데 평생을 걸겠다” 라고 결심하게 된다.

부산에서 한영 고등하교를 졸업한 앙드레김은 서울로 올라와 디자이너 최경자 양장점에서 일을 하며 1961년
최경자가 국제복장학원을 설립하자 1기생으로 입학해 디자이너 수업을 받았다.
당시 30명의 국제복장학원 1기생 중 남학생은 단 3명이였는데요 “앙드레김은 재능이 많고 감각이 뛰어났다”며 앙드레김의 스승 최경자는 자신의 회고록에 담기도 했다.

1년의 국제복장학원 과정을 수료한 앙드레김은 남성디자이너 1호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의상실을 오픈하고 반도호텔에서 패션쇼를 열게된다.

앙드레김이 김복남이 아닌 “앙드레” 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세계무데에 진출하려면 외국인들도 쉽게 부를 수있는 이름이 좋을것” 이라며 프랑스 대사관의 한 외교관이 지어준 이름이다.

앙드레김은 “그날 부터 지금까지 나는 내옷이 상품이라고 생각한적은 한번도 없었다. 나는 오페라나 발레와 같은 종합예술을 볼때 감동을 받듯이 의상도 감동을 줄수 있는 창작예술이라고 믿는다. 특히 의상과 음악, 미술이 어우러지는 패션쇼는 종합예술이기도 하다” 라고 말했다.

패션을 제외한 앙드레김 일상의 보통 사람과 다른것이 없었다.

아침 5시반정도에 일어나는 앙드레김은 제일 먼저 신문을 찾는다 종합지, 경제,영어,스포츠 까지 10개의 신문을 보는데 일기가 좋치 않아 신문이 늦을때는 그렇게 속이 상한다고 했다.

아침을 먹고 9시반에 의상실에 출근하면 그때 부터 하루 종일 옷과 시름한다

평생을 독신으로 산 앙드레김은 일외에는 낙이 없다. 술과 담배는 체질에 맞지 않아 못하고 커피도 써서 못먹는다. 운동도 조깅이외에는 할 줄아는게 없고 어린시절 부터 좋아던 음악을 듣는 것외는 별다른 취미도 없었다.

또한 독신으로 살면서 외움에 죽음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1982년 먼친척으로 부터 입양한 아이를 간난아기 부터 키우면서 헌신적 사랑의 가치를 느길 수있었다고 했다. 지난 2005년에는 그아이가 쌍둥이 손자를 얻어 앙드레김은 할아버지가 되었다.

평범한 농사의 아들로 태어나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된 앙드레김 이제 다시는 볼 수없는 길을 가셨지만 그가 남긴 패션에 열정은 영원히 살아있을것이다.

삼가 고인에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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